2010년 01월 04일
5.태양과 바다의 교실
휴힉을 하고 방황하던 지난 해 봄과 여름. 내 삶의 낙은 공부도 게임도 책도 아닌 일본 드라마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넋을 놓고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이미 한 번 봤던 춤추는 대수사선을 다시 보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드라마 판을 보다가 때려 치우고, 라이어 게임과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태양과 바다의 교실을 보았다. 그 외에도 많이 보았는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올 겨울 첫 눈이 왔을 때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작 중에 하루키 켄지가 아오이 유키 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의 민담에선 첫 눈을 천사의 눈이라고 부르는데 그 눈을 손으로 받으면 불행해진다는 말이었다. 물론 아오이 유키가 눈을 손으로 받아 버리는 바람에 행복해진다고 거짓말을 했었지만.
그리고 종종 태양과 바다의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나오는 오다 유지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내주는 숙제가 생각난다. 10년이란 시간을 주며 이름이나 학력, 성별이나 국적, 직업등을 빼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오라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 살아가면서 나를 표현하는 것들을 모두 제외한다면 나를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참 막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구조주의에 대해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 요점은 이거다. 언어는 그 지시대상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언어는 기표와 기의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나무라는 단어는 다년생식물인 나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언어는 오직 차이들의 체계에 의해서만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나무는 나무가 아닌 모든 것이다. 빛은 어둠이 아닌 것으로 정의 되고, 어둠은 빛이 아닌 것이다.(사실 배운지 좀 되서 정확한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태양과 바다의 교실이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었다면, '나는 다른 모든 사람이 아닌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왠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면 이름이나 학력, 성별이나 국정, 직업을 제외하라는 조건에는 부합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인간관계, 인생을 대변 할 수 있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루인가 이틀인가, 어쩌면 몇 분 동안인가, 고민 해보다가 말았다.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어째서인지 종종 저 질문이 떠오른다. 인생자체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내 인생에서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보면 반대로 나의 삶이나 파리의 삶이나 결국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긴 개뿔.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지, 이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를 종교에 기대고 싶지 않다. 난 종교가 싫다.
결국에는 살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저런 것들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하라면,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자신들을 설명 할 수 있지 않을까.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 by | 2010/01/04 23:25 | 별 거 없을 걸 | 트랙백 | 덧글(0)



